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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브러쉬 업 라이프 ㅣ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by mileyy 2023.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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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러쉬 업 라이프 / 일본 NTV / 안도 사쿠라 주연 / 2023 

🚨스포주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일본에서 올해 초에 방영한 드라마 '브러쉬 업 라이프'는 인생 n회차를 사는 여성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 소소한 감동을 준다. 흔히 인생을 좀 더 지혜롭게 살거나 얼굴, 실력, 집안 등 뭔가 빼어난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 2회차라고 부르며,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하거나 스스로 전생에 뭔 나쁜 짓을 했길래.. 하며 자조적인 말도 많이 한다. 일본도 이런 표현을 많이 쓰나 보다. 

타임 워프는 한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너무 많이 쓰여 이제는 좀 진부한 소재가 되어버렸다. 근데 브러쉬 업 라이프는 단순히 과거로 가는 타임 워프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드라마를 보면서 예전에 정말 재밌게 본 넷플릭스 드라마 '굿 플레이스'가 떠올랐다. 굿 플레이스가 사후세계에서 몇 번이고 기억을 잃고 다시 사는 주인공의 이야기라면, 브러쉬 업 라이프는 기억을 지닌 채로 몇 번이나 현세를 다시 사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이렇게 적고 보니 구성과 상황이 다른데 관통하는 주제가 비슷하다.

다시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좀 더 좋은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렇게 계속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30대에 갑작스럽게 죽은 주인공 아칭이 다시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해 살면서 덕을 쌓으려  노력하지만 몇번을 죽고 다시 태어나도 인간으로의 환생은 어렵기만 하다. 환생 후 그녀의 목표는 단 한 가지, 현세에 덕을 많이 쌓아 내세에 인간으로 환생하기. 어렸을 때부터 길에 있는 쓰레기를 줍고, 무심코 저지를 수 있는 범법 행위까지 차단한다. 주변 사람들을 도우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는 등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녀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발전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고급 인력이 된다. 시청 직원이었던 그녀는 다음 생에서는 약사, 그 다음 생에는 방송 pd, 그 다음 생에서는 의사 면허를 따고 전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의학 연구원이 되어 의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안에서 자신의 삶도 착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미 기억을 지닌 그녀에게 현생은 크게 재미로 다가오진 않는다.

거의 유일한 재미라면 소꿉 친구들과의 어울림이다. 아칭은 친구들과 왁자지껄 재밌게 놀았던 순간을 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곱씹는다. 그러나 이마저도 4회 차에서부턴 의사가 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공부에만 매달리느라 친구들과 친해질 여력이 없어 그저 친구들을 아련하게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나마 우등생 마리와 친구가 되는데 마리 또한 오랜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인생을 다시 살고 있었다. 마리도 원래 아칭, 다른 두 친구들과 절친이었으나 비행기 사고로 친구들을 잃고 난 후 다시 태어나 그들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인생을 거듭 살고 있다고 말한다. 아칭의 목표는 자신을 위한 것이었지만 마리의 목표는 친구들과 그 비행기 사고로 죽는 이들을 살리는 것이다. 마리는 5회 차에서도 파일럿이 됐으나 친구들을 구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아칭은 4회차 죽음 후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이를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살기로 한다. 덕을 쌓아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 삶이다. 아칭의 5회 차, 마리의 6회 차 이들은 함께 파일럿이 되어 친구들과 비행기 탑승객을 구하는 것에 매진한다. 친구들이 미래에 탑승하는 비행기의 조종사가 되려면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체력도 키워야 한다. 당연히 전생의 소꿉친구들과 놀 시간은 없어서 가까워지지 못한다. 그럼에도 아칭과 마리는 그들을 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결국 성공해 냈고 그 사건을 계기로 다시 친구들과 가까워졌다.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곁에 두고 싶은 소중한 친구들.  

남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해 많은 이들의 세상을 구한 아칭과 마리는 영웅이 되진 않았고, 친구들을 구한 이후에는 인생 1회 차 그때 그 자리로 돌아가 원래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 야망 따윈 없는 순수하고 착한 영혼의 인생 n회차들. 그러고 보니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의 대부분이 순수하다. 아칭의 가족들, 친구들, 주변 사람들, 악의를 지닌 사람이나 꼬인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드라마라 더욱 훈훈했던 것 같다. 

아칭과 마리가 구한 두 친구들의 삶은 디테일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항상 즐겁고 유쾌한 인물로 보이는데 아마 아칭과 마리에게는 그 친구들과의 관계가 가족보다도 위안을 얻고 행복을 얻기 때문에 파고들어 인생의 굴곡을 보여주지 않고 그 상태로 남아있게 한것 같다.

대신 주변인들의 삶을 보여주는데, 유치원 시절 친구 아빠의 불륜을 막았더니 커서 불륜 피해자가 됐던 레나, 가수로 성공하고 싶어 했으나 잘 풀리지 않아 30대에도 노래방 아르바이트생으로 살고 있는 후쿠짱, 중학생 때 끔찍이 싫어했지만 누명을 쓰는 현장을 목격하고 도와주게 된 선생님의 사건 등은 인생을 거듭해도 지키고 있는 소중한 주변인들이다.

상대방이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앞으로 괜한 곤경에 빠지거나 안 좋은 일을 당할걸 뻔히 알면서도 외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싫어하는 사람이면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있겠지만 역시 불편한 감정이 들 것이다. 아칭도 같은 마음으로 선생님을 도와준다. 2회 차에서 우연히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몰릴 뻔한 선생님을 구해준 후, 선생님이 최근 결혼해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되고 나서야 역시 도와주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부터는 선생님의 아이 때문이라도 무리해서 도와준다. 후쿠짱도 뻔히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알지만, 그 친구가 만약 미리 이를 알고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이후에 생길 아이가 태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저 묵묵히 응원한다.

비슷한 듯 다른 일화로 1회 차에서 대학생 때 사귄 남자친구는 사귀면서 도박에 빠져 그녀에게 돈까지 빌려가고 갚지 않지만 2회 차에서는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 이는 미래를 알고 도와주거나 도와주지 않아도 그게 좋거나 나쁜 결과, 대부분 그저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는 걸 보여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칭은 n회차 인생을 살면서 주변의 일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우리의 삶은 결국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지금 당장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가족과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다 보면 그렇게 세상과 지구를 구하고, 그리고 스스로도 구한다.

유한한 삶에서 후회가 남지 않도록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곁에 두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 내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할 것.

이들이 결국 우리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사는 동안 우리는 결코 혼자서 살 순 없으니, 이타적인 마음이 아닌 이기적인 이유로라도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타인에게도 진심을 다하면서 그 진심이 가닿지 않더라도 내 진심을 존중하고 속이지 않기. 당연한 얘기지만 살아가면서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는 일들이다.

항상 이런 작품을 볼때마다 상상해 본다.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까. 상상만으로도 벅차고 머리가 터질 듯하다. 모든 걸 바꾸고 싶으면서도 놓치는 게 싫어서 아칭의 시청 후배처럼 똑같은 삶을 살아갈 것 같기도 하다. 나비효과처럼 순간의 선택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까. 아니면 그때 그 상황에서 나의 선택이 나중에 보면 크게 인생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었을까. 겪어보고 싶기도 하고 겪어보고 싶지 않기도 하다. 다만 분명한 건, 과거를 바꿀 수 없다. 다시 살 수 있을 때 꼭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더 멀지 않은 미래에 해야 한다는 것. 이런 생각들이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게 하고,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을 준다. 

https://pedia.watcha.com/ko-KR/contents/tR72L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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