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코네 행복한 밥상 / 고레에다 히로카즈 연출 / 넷플릭스 / 2022. 12
솔직히 드라마를 보기 전 마이코에 대한 안 좋은 글을 먼저 접해서 편견을 가졌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어린 여자 아이들이 마이코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집을 떠나 합숙을 하면서 수련한다는 것이 드라마를 다 본 지금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초반까지도 저 어린애들을 혹사하다니, 저 어린애들을 술자리에 내보내다니… 하는 생각뿐이었다. 지금도 어린 여자 아이들을 돈 많은 남자들의 술자리에 부르는 저 문화는 이해되지 않고 현대사회에서 분명히 아동인권 침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은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계승하려는 노력도 많이 하는 나라이다 보니 이런 콘텐츠까지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일본인들의 마인드도 참 대단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지.
아오모리라는 일본의 북쪽 지방에 살던 단짝 친구 스미레와 키요는 마이코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중학교를 졸업하고 교토의 마이코 전문 양성소 합숙소 사쿠에 들어온다. 뛰어난 무용 실력을 갖춘 스미레에 비해 키요는 영 소질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되는 상황에서 사쿠의 요리사를 자처하게 된다. 그때부터 이 어리고 해맑은 소녀는 사쿠의 식구들에게 맛있는 밥을 만들어주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키요는 그곳에서 친구와 함께 살면서 식구들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게 세상 행복하다. 직접 장을 보고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고 저녁엔 목욕탕에 가는 하루의 일과가 키요에게는 극락처럼 보인다. 대사 중에 다른 사람들은 고민이 있는 것 같다고 하는 장면이 있으니 본인은 고민이 아예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같이 온 친구는 인정받으면서 잘 나가는데 비해 자신은 재능이 없다며 그만둬 야했을 때 키요는 절박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쿠의 요리사가 됨으로써 그 절박함을 풀어냈던 건 아닐까. 원했던 마이코는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돌아가지 않고 자신이 잘하는 요리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세상 행복해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키요의 모습을 보는 나는 저렇게 요리를 잘하고 좋아하는 키요가 사쿠에서만 요리사로 사는 게 너무 안타까워 너도 나가서 꿈을 펼치라고 응원하고 싶다. 실제로 드라마에서도 사쿠의 어른들이 키요를 걱정한다. 이대로 여기서 요리사로 지내도 괜찮냐고 거듭 물어보지만 키요는 진심으로 사쿠에서 요리사가 된 것을 행복해한다.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지낼 수 있고 음식을 맘껏 해도 되고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도 있는 생활에 만족해하는 키요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내가 어쩜 이다지도 속물이 된 건지 어른이 된건지 헷갈리기도 하다. 본인이 행복하다면 그만인 세상도 분명 있는데 말이다.
다른 주인공인 스미레는 키요보다 훨씬 복잡한 인물이다. 마이코가 되기 위해 단짝 친구를 데리고 교토에 온 당찬 아이지만 키요와 함께 고향 소꿉친구인 렌타를 짝사랑하며 마음 졸이기도 하고, 렌타가 키요를 더 좋아하는 마음을 눈치채고는 슬퍼하지만 티 내지 않는 진정한 친구다. 스미레가 소질이 있기도 하지만 드라마에서 몇 번이고 스미레가 워낙에 열심히 하는 성격이고 엄격함이 장점이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 노력파이기도 한 것 같다. 키요가 스미레를 소중히 생각하는 만큼 스미레도 키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극 중 주변인물까지도 어쩜 저렇게까지 친할 수 있지 의아해한다. 실제로 가족보다 더 끈끈한 우정이고 스미레가 빨리 수습 마이코가 될 때 그 소식을 알리고 싶어 키요를 찾으러 뛰어간다. 스미레가 견습 마이코가 되어 모모코가 마이코들만 먹는 샌드위치를 권할 때도 정식 마이코가 되면 키요가 만들어주는 샌드위치를 먹기로 약속했다고 하는 모습도 결연에 차 보인다. 의사집안에서 남부럽지 않게 컸을 텐데 마이코가 되겠다고 그 생활을 포기하고 온 것부터가 정말 남다른 아이임을 보여준다. 뛰어난 춤실력으로 스미레는 1년 만에 마이코가 되어 모모하나라는 예명을 얻는다. 사수였던 모모코의 이름을 땄는데 모모코가 모모하나의 데뷔를 축하해 주며, “널 여전히 사랑하고 내 동생으로 여기지만 이제 우린 라이벌이다”라고 하는데 진짜 모모하나가 사수하나는 잘 뒀다 싶다. 마이코가 되면서 시즌1이 끝나지만 모모하나는 모모코에 대적할 수 있는 유명한 마이코로 성장할 거라 믿는다.
사쿠의 식구들도 하나같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최고의 기생 모모코는 두말하면 입 아프고, 여주인 아즈사와 큰엄마 치요, 이혼하고 돌아온 요시노, 귀여운 마이코 세 자매, 아즈사의 딸 료코, 사쿠 바의 렌 아저씨 등등 다 좋은 사람으로 나온다. 첫 등장부터 삐딱한 모습의 료코도 알고 보면 본인때문에 게이코를 포기한 엄마 밑에서 마이코를 꿈꾸는 사람들과 살며 본인 혼자만 이방인인듯한 느낌을 받은 탓에 삐뚤어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얄미운 모습을 보여주는 경력자 요시노도 동기인 모모코가 승승장구할 때 번죽이 좋은 것을 장기로 살아남으려고 노력했던 게 아닌가도 싶다. 물론 모두 내 추측이지만 알고 보면 이해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이라 참 안쓰럽고 사랑스럽다.
드라마에서 마이코에 대한 미화만 있는 건 아니다. 가장 잘 나가는 게이코 모모코는 결혼하면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는 환경 탓에 좋아하는 사람의 청혼을 거절하면서도 후배 마이코들은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아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 한다. 사쿠의 여주인인 아즈사의 딸 료코는 본인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 아이들이 마이코가 되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그 안에 들어와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한테 아동인권 침해로 고소당할 거다라고 괜한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스미레의 아버지는 사쿠를 찾아와 스미레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어린아이들에게 술 시중을 시키고 술을 마시다 보면 손님들이 험한 짓도 하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이처럼 마이코 문화에 있는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들마저도 현대에 맞지 않는 시스템을 지적하는 모습을 보이며 마냥 미화시키진 않는다.
키요의 비중이 더 높고 드라마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 요리사 키요가 좀 더 메인 주인공에 가까운 건 신의 한 수라며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치켜세웠는데 사진을 구하기 위해 검색해 보니 만화가 원작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교토를 아름답게 담은 영상미도 너무 예뻤고 스토리를 풀어내는 감각에 있어서 감탄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은 챙겨볼 것 같다.
드라마를 보면서 이제 갓 3살이 된 우리 조카가 커서 마이코가 된다면 어쩌지 하는 상상했을 땐 도시락 싸가지고 말려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드라마를 보고 나서는 불법이 아닌 다음에야 어려서 안된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려서 안 되는 게 아니라 어리니까 도전해 봐도 좋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지. 어쩌면 어려서 도전한 탓에 어린 나이에 스미레는 요리에, 키요는 마이코에 소질이 있음을 알았고, 이후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그 경험으로 인해 삶이 더욱 풍요로워졌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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